butterflytokoi

https://youtu.be/UciPF43xpBg?si=5Kwu3lkdpOBwKXNW 

ずっとずっと一緒にいるよ




아픔도 변절도 모두 녹아내려서

w/hakano

 
 
 
후덥지근한 볕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여름의 의복으로는 여즉 서늘한 추위가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의 일이다. 실로 오랜만에 걷는 이 길은, 갑작스러운 공사가 예정되어 있지 않는 한 루아의 집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길을 걸은 것은 언제였던가? 타카스기 신스케는 목적 없는 산보처럼 느긋하게 발을 내디디는 한편, 마음의 깊은 안쪽에서는 이리저리 섞인 혼탁한 감정을 엮어내어, 좀처럼 심신의 간극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옅은 달의 실루엣이 보일 즈음에 루아의 집에 도착해서도, 신스케는 좀처럼 그 문을 두드려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는 것을 미루고만 있었다. 곰방대에 담뱃잎을 넣고, 불을 붙여 그 연기를 마신 지도 어언 열한 번째. 역시 그냥 돌아갈까. 신스케는 적당히 탄 재를 바닥에 툭툭 쳐 떨어트리고, 아주 우연히 이 주소에 당도한 사람처럼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루아와 눈이 마주친 것은 아마 이쯤이었을 것이다.
 
“…….”
 
아마도 담배 냄새의 자취를 쫓다가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루아에게, 신스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그녀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장바구니를 챙겨 나온 것은 아마도 식재 따위를 사러 가기 위한 것이리라. 자신을 위해 열어준 문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스케의 마음은 점차 복잡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표정에도 과연 나타난 것인지, 루아는 어딘가 어색하게 머리를 살짝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는 신스케의 예상 안이었다.
 
“신스케, 여긴 무슨 일…….”
 
그러나 그 가냘픈 한 마디를 내뱉고 그녀가 곧장 쓰러진 것은, 제아무리 신스케라도 미처 말로써 뱉지 못 한, 떠올린 경우의 수를 모조리 벗어나는 결과였다. 이대로 현관에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다만 그것은 염려 따위가 아니었고, 이웃들에게 쓸데없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스케는 루아를 부축해 열린 문으로 스스럼없이 들어갔다.
 
“네가 그 타이밍에 나오지만 않았어도 돌아가려고 했는데.”
 
신스케는 혀를 차며 온기 없는 말을 내뱉었다. 팔짱을 낀 채로 그렇게 말하는 신스케의 모습은, 과연 루아가 기가 죽게 만드는 것에 명백히 일조하고 있었다.
 
“……미안해.”
 
루아의 목소리는 확실히 이 감기 기운을 제외하더라도 어딘가 떨고 있는 소동물을 떠올리게 했다. 애초에 의미 없을 이 사과를 겨우 토해낸 것도, 그녀로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냉정히 말해 신스케가 알 바가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신스케는 온갖 양가감정을 그다지 넓지 않은 아량에 차올리고 있었고, 아마도 루아 역시 그것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신스케. 같이 있어주면 안 돼?”
 
그 짧은 말을 내뱉는 직전에도 루아는 한참을 침묵하고 있었다. 목소리에서는 신스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무던한 노력이 묻어났고, 오히려 그 점이 신스케의 신경을 더욱 긁어놓았다는 사실은 루아로서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싶을 일이었다.
 
“글쎄.”
 
가벼운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의미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지 않은, 혹은 못 한 듯한 무심함이 담겨 있었다. 이어서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루아를 아주 잠깐, 정말로 잠깐 응시한 신스케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열병을 앓는 루아의 눈앞에서 문을 열어 나가버렸다. 이내 쿵 닫히는 문의 소리는 어쩐지 정말로 차갑게 느껴져서, 루아는 병세의 땀과 함께 차오르는 눈물이 제 볼을 적시는 것을 그저 방치하다가, 이내 잠들어 버리고야 말았다…….
 
루아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새벽녘이었다. 아주 오래 잠든 것 같지는 않음에도 몸은 피로하기 짝이 없어, 자신이 지금 아프다는 사실을 싫더라도, 여실히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무언가 먹어야지. 혼자일수록 더 챙기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와 부엌의 냉장고를 열면, 분명 비었던 식재료 칸이 이런저런 육류나 야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설마설마하며 식탁으로 걸음을 옮기면, 자신의 필적으로 사려고 했던 물건들이 적힌 리스트와, 쓰러질 때 미처 챙긴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기억이 희미한, 애용하는 장바구니가 놓여져 있었다.
 
설마, 신스케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현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 루아는 자연스럽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거칠지만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들어오는 발소리와 같이 사뿐히 닫히는 문과, 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스케……,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아주 살짝 구겨진 것은, 열로 머리가 따끈따끈해진 루아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짙은 담배 냄새가 났다. 눈빛은 더욱 사나워지고, 곰방대를 든 손에 무의식중에 힘을 주어,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지게 되는 것도 열꽃에 시달리는 루아로서는 알 수 없었다.
 
괜한 친절이었나.
역시 돌아갈걸.
 
그 말은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은 한 방울의 선의에 의해 입 밖으로 꺼내어지지 못했다. 불쾌감과 후회로 굳은 신스케의 앞까지 간 루아는, 단번에 그 몸을 끌어안았다. 그의 감정 따위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였으나, 그것은 언제나와 같은 일이었으니까. 얼핏 연인의 포옹처럼도 보이는 그 끌어안음은, 사실은 정말로 썩은 사과와 같았다. 안은 썩어 갈색 즙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악취가 나지만, 겉의 껍데기만은 정말로 깨끗하고 수려하게 빛나고 있어, 무심코 그것을 한 입 깨물어버리고 싶은 과실처럼…….
 
“고마워, 신스케!”
 
그러니까, 루아가 홍옥의 안을 모르는 것은 그것을 깨물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홍옥을 깨물어 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는 주제 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어코 해충이 껍질을 뚫고 밖에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어떠한 결점도 감히 찾아볼 수 없을 그녀는, 분명 지레 겁을 먹어 겉만을 반질반질 닦아두는 탓이리라.
 
새벽이 깊어져도 해가 뜨려면 아직은 멀었다. 루아에게 꽉 안긴 채로, 신스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역시, 너 따위에게 친절 따위 베푸는 것이 아니었는데, 라고. 終
 

 

 

DALBOM